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모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본성은, 내가 보는 그 모습이 전부일까요?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족, 연인, 친구…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상대를 잘 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은 때로 오해로부터 비롯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본성이란, 관계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응답의 방식’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했습니다. “타자는 항상 나의 이해 바깥에 있다.”
그 말은 타인을 진정으로 아는 일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여정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본성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겉모습이나 말투,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성은 그런 피상적인 정보와는 다른 결을 지닙니다.
본성은 필요할 때 꺼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기치 않은 갈등이나 위기의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었다고 믿었던’ 타인의 모습과 너무 달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다름이 곧 거짓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중 어떤 얼굴이 어떤 상황에서 드러날지는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본성을 ‘보이는 것’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이 드러나는가’를 조용히 관찰하는 것이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해라는 이름의 투사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종종 자신의 기대나 욕망, 두려움을 투사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그를 해석하게 됩니다.
철학자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가 본성을 왜곡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홉스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며, 질서를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어쩌면 우리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기준을 하루에도 수없이 바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인정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오해 속에 갇힌 채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본성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사실 그 사람을 명확히 정의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닐까요.
관계는 서로의 본성을 마주 보게 하는 실험실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는, 어쩌면 서로의 본성이 조용히 드러나는 실험실일지도 모릅니다.
서로가 미처 몰랐던 자기 안의 반응을 끌어올리고, 감정과 태도의 거울처럼 작용하니까요.
한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다기보다, 그 본성이 드러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선함이나 공격성, 두려움 같은 것들이 다르게 반응하니까요.
그래서 관계 안에서 ‘저 사람이 왜 저럴까?’라는 말은 종종 ‘나는 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공부에서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알아간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본성은 단지 ‘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어떤 감정과 반응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통해 나를 조금 더 이해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타인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건, ‘모른다’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겸손일지도 모릅니다.
모른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그 안에서 더 깊은 존중과 기다림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바라볼 때, 타인의 본성은 조심스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모른다’를 인정하는 태도는 결국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넓은 마음이 됩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이 글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섬세하다는 것을 조용히 정리해보고 싶어 쓴 기록입니다.
내가 나를 알아가듯이, 당신도 당신 안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해는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 솜사탕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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