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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나도 모르는 나 – 내 안의 본성에 대하여

by 솜사탕써니(somsatangsunny)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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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본성 관련이미지

본성이란 말 앞에 멈추게 됩니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 그건 진짜 나일까요?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입니다.
 철학자들은 오랜 시간 이 질문을 붙잡아 왔지만, 사실 그것은 먼 학문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매일 마주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나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왜 나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런 내가 나였을까.”

 스토아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행복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행복이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의 본성과 얼마나 가까워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람은 본래 선한 가요, 아니면 악할까요.
 맹자는 인간 안에는 누구나 ‘선함의 씨앗’이 있다고 했고, 순자는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도덕과 규범으로 다듬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사르트르는 또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기 존재를 만들어간다.”
 그 말은, 타고난 성향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이 나를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어떤 본성을 드러내며 살아왔을까요?
 어떤 선택들을 반복해 왔는지 돌아보면, 그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본성의 흐름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성이 무엇이냐보다, 내가 그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입니다.
 숨기고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자연스럽지만, 있는 그대로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합니다.

 본성은 때로는 내가 택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내 반응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정체성과 본성 사이에서

 정체성과 본성은 닮았지만 같은 말은 아닙니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식이라면, 본성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반응하는가’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내가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나는 내 모습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 억울할 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때마다 나도 몰랐던 내가 고개를 듭니다.

 스토아 철학은 흔들림 없는 평온을 추구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내 안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억제하려 애쓰지만, 사실은 그 감정을 조용히 마주 볼 수 있는 힘이 삶의 평온을 만들어 줍니다.

 내 본성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본성과 대화를 나누려는 마음은 나 자신을 향한 깊은 존중이기도 합니다.

 본성이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그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 더 가늠하게 됩니다.

무너질 때 나타나는 본성

 사람은 무너지는 순간에 진짜 본성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맞기도 하고, 조금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벼랑 끝까지 차올랐을 때, 우리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진짜 나’라기보다, 그저 그 순간의 ‘반사된 나’ 일지도 모릅니다.

 본성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드러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그래서 본성을 단정하지 않고, “지금 내가 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문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의 위기 속에서 감정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조용히 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본성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닐까요.

 그 모습이 불편할지라도, 그 또한 나라는 걸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본성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본성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부드러워집니다

 본성은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이해가 쌓이면,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조금씩 더 부드러워지고 여유로워집니다.

 내가 나를 다 아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또 낯설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네가 누구든, 나는 조금씩 알아가 볼게.”

 나를 너무 빨리 정의하지 않고, 조금 느리게 알아가려는 마음이 본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게 ‘나’를 알아가듯이, ‘타인’이라는 또 하나의 우주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믿고 있었던 관계 속의 본성과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용히 짚어보려 합니다.

 

< 이 글은 제 안에 머물고 있는 본성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본 하루의 기록입니다.
나를 더 많이 안다는 것이 반드시 나를 더 잘 통제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는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조용히 걸어봅니다. — 솜사탕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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