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니라, 인식해야 할 신호입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이 감정의 출발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철학은 그 감정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묻습니다.
이 글은 뇌 속의 아주 오래된 기관인 아미그달라(편도체)를 중심으로,
우리 안의 감정 반응을 철학적 시선과 마음공부로 함께 들여다보려는 시도입니다.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 생존 본능의 스위치, 아미그달라
감정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작동해 온 생존 시스템입니다.
그 중심에는 ‘아미그달라(amygdala)’라 불리는 편도체가 있습니다. 이 작은 기관은 위협적인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이 빠르게 방어태세를 갖추게 합니다.
심리학자 조지프 르두는 이 아미그달라를 “부정적인 감정을 켜고 끄는 스위치”라고 말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경고등처럼, 아미그달라는 우리에게 ‘지금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놀라운 점은, 이 반응이 논리나 사고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감정’이라는 본능의 신호에 노출된 뒤에야, 뒤늦게 그 상황을 인식하고 분석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감정은 달리 보입니다.
무조건 참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죠.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왜 왔는지를 알아채는 것이 진정한 조절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아미그달라를 통해 배웁니다.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 앞에 멈춥니다.
“왜 나는 이렇게 예민할까?”
“왜 그 한마디 말에 이렇게 반응이 클까?”
이유를 모를 때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고, 그 휘둘림 속에서 또다시 자신을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감정에 의해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의 원인을 모를 때 휘둘리는 존재이다.”
아미그달라는 그 원인의 한 축을 설명합니다.
외부 자극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아미그달라는 즉시 불안을 일으키고, 심장박동을 높이며, 우리의 몸을 ‘도망칠 준비’ 상태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반응은 반드시 외적 위협이 아니더라도 작동합니다.
누군가의 비난, 과거의 트라우마, 실망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뇌는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사소한 일에도 크게 반응하게 됩니다.
감정이 강한 사람이 나약한 게 아니라,
그만큼 아미그달라가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외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 앞에서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빨간불을 모르고 사는가
아미그달라는 불을 켜줍니다. 그 불은 우리에게 분명한 신호를 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불을 ‘없애야 할 것’으로 오해합니다.
“참아야지.”
“이 정도로 예민하게 굴면 안 되지.”
“왜 나는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거지?”
이런 말들은 결국, 우리 안의 경고등을 무시하게 만들고, 그 결과는 더 큰 분노나 억울함으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아미그달라가 경고음을 울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듣고, 숨을 고르는 것입니다.
90초만 심호흡을 해보세요.
감정은 마치 아이처럼, “나 여기 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라는 걸
조용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경고등을 인식하는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감정은 억제 아닌 ‘작별할 준비’
마음공부는 감정을 없애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놓아 보낼지를 배우는 공부입니다.
감정은 눌러둘수록 오래 머뭅니다.
그러나 인정받은 감정은 천천히 떠날 준비를 시작합니다.
“지금 나 무서워.”, “지금 나 억울해.” 그 말을 내 마음 안에서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반쯤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망은 절망임을 인식하는 순간 그 힘을 잃는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감정을 느낄 때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정은 내 존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감정을 포용하는 순간, 우리는 단지 안정된 마음이 아니라, 깊은 존재의 울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감정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를 없애지 않아. 다만 네가 떠날 수 있도록 잠시 나와 함께 머물러줄래?”
감정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유로워진다
감정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감정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미그달라는 감정을 켜고 끄는 스위치지만, 그 스위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본능이라고만 여길 수도 있고, 존재의 언어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없애는 존재가 아닙니다.
감정을 인식하고, 살아내고, 보내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인식의 시작이, 바로 우리의 존재를 지키는 가장 따뜻한 선택입니다.
<이 글은 감정이라는 존재의 언어를 조용히 인식하고 싶었던 하루에 쓰였습니다. — 솜사탕써니>
🧠 아미그달라(편도체)란?
아미그달라는 뇌의 측두엽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편도 모양의 기관입니다.
공포, 불안, 분노 같은 정서 반응을 담당하며, 생존 본능과 감정 기억에 깊이 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 뇌과학은 이 아미그달라가 우리의 ‘감정 반응’뿐 아니라 ‘감정 조절’에 있어서도 핵심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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