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기대에 나를 맡기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이 사라져요.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어디로 여행 가고 싶어? 이사할 땐 어디가 좋을까? 이런 작고 사소한 질문부터, 삶의 중요한 결정까지 나는 늘 먼저 상대방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되묻곤 합니다.
선택을 미루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게 더 편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결정하는 힘조차 잃어버리고, 어떤 선택이 내 마음이었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 글은 그런 ‘선택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이야기예요. 그 안의 흔들림과 불안, 그리고 나를 중심에 다시 세우는 마음공부의 시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보다 남이 먼저인 선택, 익숙하지만 아픈 습관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을 때면 “뭐 먹고 싶어?”라는 말에 나는 습관적으로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해요. 진심으로 상관없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내 의견이 어긋나서 분위기를 흐릴까 봐 걱정이 된 거예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의 중 어떤 안건에 찬반을 물을 때, 나는 눈치를 봅니다. 상사의 표정, 옆 동료의 반응, 전체 분위기. 결국 다들 찬성하자고 하니, “저도 찬성입니다”라고 말해요. 속으로는 불편했지만 말이죠.
이렇게 선택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그 선택의 결과마저 내 것이 아니게 느껴져요. 마음은 자꾸만 비워지고,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건, 그렇게 내 마음을 미루는 삶이 언젠가는 습관처럼 굳어진다는 거예요. 그 습관은 나도 모르게 삶의 색을 흐리게 만들죠.
철학은 묻습니다. 당신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요?
선택은 결국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에 대한 질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의 가치, 사회적 기준, ‘당연한 흐름’에 내 마음을 맡기고 있어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어요. “인간은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선택하지 않는 삶은, 타인이 대신 살아주는 삶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나는 점점 결정하는 힘을 잃게 돼요.
선택을 못하는 건 결코 게으름도, 무능도 아니에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확신 없는 버티기’ 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버팀 속에서 내 감정은 조용히 닳아가고 있을지 몰라요.
작은 것부터 괜찮아요. 오늘 어떤 커피를 마실지, 주말에 어떤 길을 걸을지, 만남을 가질지 등의 그 작은 선택에서 나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어요.
선택은 결국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고, 그 주도권은 생각보다 훨씬 자그마한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마음공부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연습부터
마음공부는 거창하지 않아요. 지금 내 마음이 “싫다”라고 말하고 있는지, “사실 이걸 해보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는지 조용히 내 마음을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돼요.
어쩌면 나는 평소에도 너무 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도 몰라요. 친절하게 웃고, 맞장구치고, 배려하느라 내 안에서 작은 속삭임은 묻혀버렸어요.
선택을 자주 미루는 나, 그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타인의 기대에 나를 맞춰온 결과일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는 “이건 내가 원한 거야?” “지금 이 결정은 정말 내 마음일까?”라는 질문을, 조용히 나에게 건네보세요.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그 연습이 쌓일수록 내 선택은 점점 더 내 것이 되어갈 거예요.
그리고 그 선택은 더 이상 ‘결정장애’가 아니라,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성숙한 걸음이 될 수 있어요.
마음을 중심에 다시 놓기
선택하지 못하는 나는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너무 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뒤로 미뤄왔던 다정한 사람이었을 뿐이에요.
철학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 이 선택은, 누구의 삶을 위한 것인가요?”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조용히 인정해도 괜찮아요. 크든 작든, 그 선택이 나의 마음에서 출발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멋진 선택이에요.
다음번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전에, 조용히 내 마음에게 먼저 물어주세요. “넌 어떻게 하고 싶어?” 그 질문이 쌓이면, 당신은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나답게 사는 삶'이 시작될 수 있어요. 그건 누구보다 아름답고 용기 있는 걸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