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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플 때 2편

by 솜사탕써니(somsatangsunny)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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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없애려 하지 말고, 들어야 할 때

 

 몸이 아픈 이유를 찾고, 고치려 애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이 아픔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통증이 즉각 사라져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아픔은 지금 내가 나를 얼마나 외면해 왔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언어일지도 모르니까요.

 1편에서 우리는 몸의 통증이 단순한 고장이 아닌, 존재의 경고음이자 삶의 외침이라는 철학적 시선으로 통증을 바라봤습니다.

 이번 2편에서는 “그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사유해보려 합니다.

 고통을 밀어내는 대신 ‘그 자리에 함께 머물 수 있는 태도’를 철학과 함께 찾아가 보아요.

고통은 제거가 아니라 수용의 대상일 때도 있다

 현대 사회는 ‘빠른 치유’와 ‘즉각적인 회복’을 말합니다.

 병원도, 약도, 치료법도 많아졌지만 몸이 계속 아프다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어요.

 왜일까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지 않고, 그저 없애려고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스피노자는 인간을 “정념(감정)과 신체가 분리되지 않은 존재”라 했어요.

 즉, 몸의 고통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그 감정은 다시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고통을 없애기보단 “나는 지금 이 아픔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묻는 것이 먼저일 수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아플까?”보다는 “이 통증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통증과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고통을 없애려 애쓰는 마음이 고통 자체보다 더 큰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 긴장이 풀어질 때, 비로소 통증도 숨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몸을 돌본다는 건, 나를 다시 바라보는 일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종종 몸을 나와 분리된 대상처럼 취급합니다.

 “왜 이러지, 왜 말을 안 들어?” “좀 참아줘야 하는데…”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습관은 통증을 더 외롭게 만듭니다.

 하지만 철학은 말해요. “몸을 돌보는 건 자기 존재 전체를 인정하는 행위”라고요.

 하이데거는 존재가 ‘세계에 던져진다’고 했지만, 그 존재는 결코 ‘생각만 있는 자아’가 아니라 몸을 지닌 나,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예요.

 몸을 돌본다는 건 그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을 넘어서 지금의 나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 “이 아픔도 나다” 이런 말이 몸에게 들려주는 위로일 수 있어요.

 몸을 미워하는 대신 다정하게 손을 얹어주는 태도, 그게 바로 철학이 말하는 존재의 돌봄입니다.

 몸을 돌본다는 건 단지 휴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과 연결돼 있어요.

 그 변화는 아주 작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완벽한 회복보다, 불완전한 나를 품는 용기

 많은 이들이 “언제쯤 이 통증이 나을까”라고 말해요.

 물론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일부 통증은 삶이 끝날 때까지 함께 갈지도 모릅니다.

 이걸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게 철학의 역할이에요.

 스토아 철학은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유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완전히 나아야만 회복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아픔을 안고서도 삶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내적 힘이 더 중요할 수 있어요.

 그 힘은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아파도, 나는 나를 품을 수 있다는 용기.

 그게 바로 철학이 건네는 조용한 회복의 문장입니다.

 아픔을 안고 사는 삶은 결코 부족한 삶이 아니에요. 그건 오히려 더욱 사유 깊고, 단단해지는 삶일 수 있어요.

몸의 통증은 멈춤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

 몸이 아픈 당신, 지금도 괜찮지 않은 어딘가를 안고 있는 당신에게 철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말하고 있는 걸 들어주세요. 그건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삶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삶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몸은 멈추지 않고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고통이 올라오는 자리에 따뜻한 사유 하나 얹어줄 수 있다면 몸은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회복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되는 일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은 그 아픔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아픈 나 자신에게 다정하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괜찮아, 네가 아픈 건 살아 있다는 증거야. 그리고 나는 그 아픔과 함께,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어.”

 

♣ 몸이 보내는 감각을 단지 지워야 할 문제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언어로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에게 이 글을 건넵니다.

몸이 아플 때 1편

몸이 아플 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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