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몸이 말하는 철학의 언어다
“왜 이렇게 몸이 아프지?”
문득 찾아온 두통, 어깨 결림, 복부 통증, 온몸의 피로감. 병원에 가도 특별한 원인은 없고, 약을 먹어도 그때뿐일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진짜 어디가 잘못된 걸까?”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단지 신체의 이상을 먼저 떠올리지만 철학은 조금 다르게 묻습니다.
“몸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는 건, 혹시 그동안 너무 조용히 무시당했던 게 아닐까?”
이 글은 통증이라는 신호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단순히 병리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몸이란 무엇인가’, ‘왜 통증은 존재를 흔드는가’에 대한 사유를 통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나의 아픔을 바라보려 합니다.
몸은 감정보다 먼저 아프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많은 경우 몸이 먼저 아픔을 드러냅니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결국 신체로 스며들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시간 억누른 스트레스가 위장을 아프게 하고, 무리한 관계 속 긴장이 어깨에 고스란히 담기며, 지속적인 불안이 불면증과 두통을 가져오곤 합니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말했습니다. “몸은 나의 세계를 향한 첫 번째 시선이다.”
그는 ‘몸’을 단순한 물리적 껍데기가 아니라, 나와 세계가 연결되는 가장 원초적인 통로로 보았어요.
몸은 세계를 느끼는 창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창을 무시한 채 생각과 할 일에만 몰두해요.
그리고 그 무시가 쌓이면 몸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통증’이라는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통증은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신호다
철학은 통증을 단순한 고장으로 보지 않아요.
통증은 존재가 보내는 내밀한 언어이자,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삶의 반응'으로 해석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하는 유일한 존재”라 했어요.
그 말은 곧,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해석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바로 그 해석과 판단이 몸에게는 '지속적인 억압'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이 정도쯤은 참을 수 있어", "조금만 더 하면 끝나니까", "지금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이런 자기 설득이 반복될수록 몸은 ‘표현되지 못한 자아’의 무대가 되어 결국엔 통증으로 저항을 드러냅니다.
몸은 우리가 끝없이 미루어둔 감정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억눌린 감정의 흔적은 언제나 신체에 남습니다.
그래서 통증은 종종 ‘지금의 나’가 아닌, ‘누적된 나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존재는 몸으로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몸과 함께 세계 안에 던져져 있다”라고 말했어요.
즉, 우리는 몸을 통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며, 몸을 무시한 채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몸은 철저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생각은 과거에 머무르거나 미래를 상상하지만, 몸은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 반응하고 있어요.
우리가 아프다는 건 생각과 몸의 간극이 벌어졌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마음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데, 몸은 제자리에 머물며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우리는 몸의 그런 속삭임을 무시한 채 할 일을 우선하고, 성과를 먼저 생각하고, “지금은 아플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결과, 몸은 점점 더 큰 소리로 존재를 외치게 됩니다.
그 소리가 바로 통증이고, 그 외침이 바로 ‘나’라는 존재가 간절히 요구하는 쉼의 언어입니다.
몸은 고장이 아니라, 존재의 경고음
우리는 통증을 없애야 할 문제로만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철학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아픔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이 보내는 신호다.”
몸은 나보다 더 솔직한 존재입니다.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고, 감정보다 깊은 곳에서 진실을 드러냅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아픔은 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오래 자신을 외면했다는 흔적일 수도 있어요.
이제는 아픔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아픔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잠시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2편에서는 ‘아픈 몸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를 주제로, 치유와 회복에 대한 철학의 시선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몸은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나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살아 있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닦고, 들여다보고, 조용히 손을 얹어주는 일. 그게 바로 철학이 말하는 ‘존재 돌봄’의 시작입니다.
< 이 글은 몸이 아프고 나서야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던 어느 날의 기록이에요.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내 존재 전체가 보낸 신호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통증이 달리 느껴졌어요.
아픔을 없애려는 마음보다, 그 아픔에 다가가는 시선을 배우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솜사탕써니 >
♣ 몸이 보내는 감각을 단지 지워야 할 문제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언어로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에게 이 글을 건넵니다.
몸이 아플 때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