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회피의 집착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간다는 건, 삶이 버겁고 흔들릴 때 나를 지탱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놓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이 시리즈는 우리 안에 오래 머물러 있는 집착의 감정을 다루고 있어요.
1편에서는 애착에서 집착으로 옮겨가는 물건의 의미를, 2편에서는 소비를 통해 감정을 메우는 행위를 다뤘다면, 이번 3편에서는 ‘술과 담배’라는 가장 익숙한 회피의 방식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잠시 잊고 싶어 하는지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한 잔의 위로, 한 모금의 습관
하루의 끝, 혼자 마시는 술 한 잔은 종종 '괜찮아, 오늘도 고생했어'라는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긴장한 몸을 풀기 위한 담배 한 개비는 스스로를 놓아주는 작은 휴식 같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건 내 방식의 스트레스 해소야.” “기호식품일 뿐이야, 누구에게도 피해 주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 ‘습관’이 반복되고, 나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건 더 이상 취향이나 기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한 모금의 시간이 없으면 견디기 힘든 감정이 있다는 걸,
우리는 스스로도 인정하기 어려워할 때가 많아요.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회피
우리는 때때로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로 이 문제를 말끝에서 멈춥니다. “그 사람도 자기 방식이 있는 거지.”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그건 자유니까.”
하지만 철학은 조금 더 깊이 묻습니다. “그 자유가 누군가의 고통이 될 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존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실제로 술과 담배는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줍니다. 감정의 폭력, 무너진 신뢰, 반복되는 실망, 가족의 눈물. 그 모든 걸 '기호'라는 말로 지워낼 수는 없습니다.
‘나를 위한 것’처럼 시작된 행동이 결국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고통을 남긴다면,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의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자유는 스스로를 해치지 않을 때 진짜 자유가 되고,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의미가 됩니다.
중독이 아닌, 외로움의 언어
술과 담배는 때때로 말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합니다. “힘들어.” “지쳤어.” “나는 지금 외로워.”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죠. 대신 한 잔을 더 따르고, 한 개비를 더 붙입니다. 그리고 그걸로 마음을 잠시나마 눌러놓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착은 종종 고립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중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로움과 고통이 모양을 바꾼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의지력의 부족’으로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삶이 버거운 사람에게 ‘끊어라’는 말보다 먼저 필요한 건, 그가 술잔이나 담배에 기대야만 했던 그 마음의 무게를 이해하는 일이에요.
외로움은 가장 조용하게 우리를 잠식하는 감정이에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그 안에서는 오래도록 흔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 철학의 질문
멈춘다는 건 단지 행동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철학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잊고 싶어서 이 습관을 반복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감정은 정말 혼자만 안고 가야 할 문제인가요?”
나를 위로하겠다며 시작된 일들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그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부끄러운 일도, 나약한 일도 아니에요.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려는 아주 용기 있는 태도입니다.
무엇을 끊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진짜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당신은 더 따뜻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말없이 채우는 습관보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감정의 틈을 술이나 담배가 아닌, 조용히 마주 앉아주는 따뜻한 시선으로 메워야 할 시간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더 부드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끊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그 감정 안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고통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조차, 그 안에 여전히 돌보고 싶은 '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필요했던 건 끊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나를 놓는 연습’이라는 주제로 이제는 놓아야 할 감정과 집착, 그리고 그 너머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놓지 못하는 것들, 그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