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일탈 속에서 내가 나를 다시 만나는 순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이 있어요.
어떤 날은 그저 떠나고 싶고, 어떤 날은 무언가를 찾고 싶고, 또 어떤 날은 “지금 여기 아닌 어딘가”가 간절해져서 짐을 쌉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까요?
여행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에요. 그건 존재가 낯선 곳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철학적 이동이에요.
이번 글은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왜 우리는 더 깊은 질문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나를 ‘다시 보는 연습’이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풀어보는 여정입니다.
익숙함을 벗어나면 질문이 피어난다
하이데거는 말했어요. “존재는 익숙함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익숙한 일상 속에선 자기 자신을 잘 의식하지 못해요. 반복되는 풍경, 똑같은 리듬, 예측 가능한 감정과 행동들. 그 안에서는 ‘사유’보다 ‘자동반응’이 더 많아지죠.
하지만 낯선 장소에 도착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피게 되고, 자세히 관찰하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예민하게 감지해요.
익숙함은 안정을 주지만, 동시에 질문을 가둬요. 반면 낯섦은 불편함 속에서 질문을 깨워줍니다.
“이곳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걸까?”,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철학은 늘 질문에서 시작돼요. 여행은 우리에게 그 질문의 첫 장을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공간이죠.
어쩌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답을 찾고 싶다’는 욕구보다 ‘다시 질문할 수 있는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무의식의 몸짓일지도 몰라요.
낯선 공간은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한다
여행 중 우리는 시간을 다르게 씁니다.
익숙한 공간에선 ‘해야 할 일’이 시간의 기준이지만, 여행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우선순위가 되죠.
이 낯선 시간 감각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나’를 다시 만납니다.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하고 있는 사람', '그저 바라보고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죠.
철학자 파스칼은 말했어요. “인간은 조용히 방 안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공간은 내가 나와 고요히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과 같아요.
걷는 동안 우리는 말을 줄이고, 듣고 보는 일에 집중하며 존재의 감각을 되살려요.
그리고 그 낯선 공간은 내 안에 익숙했던 생각과 조용히 거리를 만들어줘요. 거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생각이 아닌 삶’ 자체를 느끼게 됩니다.
그건 사유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사유를 살아보는 순간이에요.
여행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이다
일상은 익숙한 루트를 반복하게 만들어요.
정해진 길, 익숙한 선택, 자극은 있지만 변화는 적은 흐름.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기화된 삶’을 잃어갑니다.
여행은 그 고리를 잠시 끊는 연습이에요.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없는 하루. 그 안에서 우리는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이 어떤 것인지 다시 배웁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하루, 지도 없이 걷는 거리,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풍경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마음의 중심을 잡게 돼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뭘까?”, “이 시간에 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이런 질문이 생겨날 때, 삶은 다시 방향을 갖게 됩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는 선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일”이라고 했어요.
여행은 강요 없이 선택하게 만들고, 그 선택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작고 조용한 실천입니다.
여행은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사유의 길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걸 잊을 순 없어요. 삶의 문제도, 내 안의 혼란도 여전히 짐처럼 함께 따라오죠.
하지만 그 낯선 길 위에서 그 모든 것들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요.
빠르게 결정했던 문제를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되고, 감정에 휩쓸렸던 관계도 조금 멀리서 관조하게 돼요.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철학은 ‘거리 두기’의 감각이에요. 삶을, 나를, 세상을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힘.
그 힘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진 않아요. 하지만 분명 삶을 대하는 '내 태도'는 바꿔줍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하진 않아도 “내가 다시 깨어났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그 길이 당신에게 사유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건 몸이 아니라 당신의 사유가 걸음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 낯선 길 위에서 철학은 조용히 속삭일 거예요.
“지금, 네가 너에게 다시 가고 있어.”
< 여행은 도망치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나를 더 가까이서 바라보게 만든 시간이었어요. 낯선 곳에서 마주한 건 세상이 아니라, 다시 깨어난 ‘나 자신’이었습니다. — 솜사탕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