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우면 상처받고, 멀면 외로운 우리 사이의 간격에 대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거리가 마음의 온도보다 더 섬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서운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 적당한 거리를 찾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이 글은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불편함을 철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더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꼭 붙어 있지 않아도 괜찮고, 가끔은 떨어져 있어야 서로가 더 잘 보인다는 것을 철학은 아주 조용히 알려줍니다.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는 순간들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어?”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에게서 들은 이 한 마디가 왠지 모르게 크게 박혀서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날이 있었을 겁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 더 깊이 상처받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오히려 ‘가까운 사이’니까 당연히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이나 ‘가족이니까 무조건 받아줘야지’라는 무의식이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조이게 만들기도 하죠.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로 나누며 말했습니다. ‘너’로 대하는 관계는 존중과 경청이 있고, ‘그것’으로 대하는 관계는 대상화와 기능적 기대가 있죠.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서로가 ‘너’가 아닌 ‘그것’이 되어버린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거리를 두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내가 해석한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거리는 오히려 관계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너무 멀어서 외로운 날들
반대로, 때론 관계가 멀어져서 마음이 허전할 때도 있습니다. 친했던 친구와 서서히 연락이 끊기고, 가족과도 말보다는 필요할 때만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갈 때. 그 거리는 말없이 마음을 서운하게 만드는 거리입니다. “이젠 다들 각자 삶이 바빠서 그런 거지”라고 애써 넘기지만, 한참 뒤에도 연락 한 통 없는 친구를 떠올리면 괜히 외로운 기분이 밀려오죠.
철학자 레이몽 아롱은 말합니다. “인간은 함께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떨어져 있을 때 존재를 되새긴다.” 관계가 멀어졌다고 끝난 건 아닙니다. 그 자리를 돌아보고,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마음을 연결할 수도 있죠. 때론 우리가 멀어진 게 아니라, 잠시 서로의 삶을 존중하느라 쉬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관계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 다시 열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에서 이어집니다.
철학이 알려주는, 적당함의 미덕
가까워도 힘들고, 멀어도 서운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디쯤에 머물러야 할지 막막해질 때, 철학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적당함은 기술이자 지혜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中庸, the golden mean)을 강조했습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태도가 삶과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친구의 고민을 들어줄 때 모든 걸 해결해 주려 애쓰기보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라고 가볍게 말해주는 것. 그 한마디가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낄수록 도와주고 싶고, 더 가깝고 싶어 지지만, 가까움은 밀착이 아니라, 배려 속의 여유로움일 때 오래갑니다. 관계의 거리란 정답이 있는 공식이 아니라 서로가 숨 쉬는 틈을 만들어주는 마음의 공간이에요. 조금 느슨해 보여도, 그 사이가 따뜻하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거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 안에서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가깝다고 해서 항상 편한 것도 아니고, 멀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것도 아니죠.
철학은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함’이라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그 적당함은 서로를 방치하는 것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아닌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거리입니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요. 그 거리는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언제든 다시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우리만의 소중한 온기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