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시리즈 - 총 4편 > 이 글은 ‘결혼’이라는 선택 이후, 존재의 변화와 정체성의 여정을 여성과 남성 각각의 시선으로 풀어낸 4편의 철학 에세이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여성편(1, 2편)과 남성편(1, 2편)으로 나뉘며,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과 성장, 그리고 ‘나’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따뜻하게 담고자 했습니다. 관계 속에서 누구도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일상을 철학적으로 비추고자 합니다. |
이 글은 [결혼 시리즈 – 남성의 시선 1편]입니다.
가장의 역할 속에서 감춰진 불안과 침묵에 대하여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또 하나의 책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특히 남성에게 결혼은 ‘가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경제적 무게, 감정 절제, 침묵의 훈련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은 결혼 이후 남성이 겪는 ‘보이지 않는 고독’과 그 속에서 감춰진 감정의 층위를 조용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지금,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선택의 순간, 기대의 무게
결혼을 선택한 순간, 남성에게는 단순한 ‘동반자 관계’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과 생계에 대한 기대가 함께 얹힙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먼저 “이제 네가 책임져야지”라는 말이 다가옵니다.
하이데거는 말했습니다. "존재는 책임을 요구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지만, 그 선택 이후 기다리는 건 ‘감정의 나눔’이 아닌 ‘역할의 수행’ 일 때가 많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남성은 가장이라는 옷을 입고 감정을 접고, 약함을 숨기며 묵묵히 ‘버텨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 누구도 명확히 말하지 않지만, 사회는 은연중에 남성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 무게는 남성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쌓여갑니다.
그 책임감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기꺼이 짊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가 조용히 덧씌운 옷이기도 합니다.
선택은 자유였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역할은 거의 자동처럼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고독
가장은 가족을 지키는 존재이자 가장 외로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남편, 아빠라는 역할 뒤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과 고독이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니체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킨다."
남성은 고통을 말하기보다, 일을 더 많이 하거나 말을 줄이는 방식으로 견뎌냅니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계속 뒤로 미루는 습관이 생깁니다.
“힘들다”는 말보다 “괜찮아”라는 말이 더 안전하다고 배워온 시간들이 남성의 언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속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남성 스스로도, 그것이 감정의 무너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은 종종 ‘나는 괜찮다’는 자기기만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며, 자신을 위로할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침묵 뒤의 감정들
결혼 후, 남성은 말이 줄어듭니다. 그 말 줄임은 무관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폴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비추어 본다."
남편이 되면서, 아빠가 되면서 남성은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을 위한 안정’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을 말하기보다 책임을 지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침묵 뒤에는 말하지 못한 불안,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감정들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작게나마 말하기 시작할 때, 관계는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감정을 말하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용기의 첫걸음입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언어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관계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가장의 자리를 넘어서, 한 사람으로
결혼은 남성을 가장이 되게 만들지만, 그 역할 속에 갇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가장이기 전에, 하나의 ‘개인’이며 ‘존재’입니다.
이 글은 남성의 책임을 변명하거나, 고통을 과장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그저, 말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의 내면을 한 번쯤 따뜻하게 들여다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을 책임지는 것은 혼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결혼은 함께 살아가는 선택이고, 그 안에서 남성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짜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 글은 결혼시리즈 남성의 시선 1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결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라는 주제로 감정의 언어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남성의 회복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결혼이라는 선택》 4부작 시리즈를 함께 읽어보세요.
결혼,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 (남성편 1편)